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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맞춤복”컬렉션-오트쿠튀르(2004-01-2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1-20 23:56:54
조회수
7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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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맞춤복”컬렉션-오트쿠튀르


 

 


 

19세기말부터 매년 두차례 파리개최


 

디자이너 꿈의 무대 ‘오트쿠튀르’


 

프랑스어로 ‘고급 맞춤복’이란 의미의 ‘오트쿠틔르(Haute-Couture)'는 파리디자이너들이 사업 보호를 목적으로 구성한 파리고급의상조합을 말한다.


 

이 조합은 아주 까다롭고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한테 그 규정 중 하나가 시즌(봄·여름/가을·겨울)마다 각각 75점 이상의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복 행상인 ‘프레타 포르테’와 대별되는 ‘오트쿠튀르’가 파리에선 매년 두 차례씩 열리는 이유다.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하는 대표적인 패션 하우스로는 샤넬, 크리스티앙 라크르와, 발렌티노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 디자이너로는 ‘지해’와 ‘한송’이 참여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구성된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그 규정이 엄격한 만큼 오랫동안 ‘패션의 코어(core)’로 군림해 왔다.


 

특히 기성복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직전인 2차대전 직후까지 오트쿠튀르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성복 자체가 질이 좋지 않고 값싼 대중품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패션리더들은 모두 오트쿠튀르를 맟춰 입었던 것.


 

1920~1930년대 그레타 가르보, 윈저 공작부인, 글로리아 기네스, 비스마르크 백작 등이 이용했던 지방시나 마담 그레, 크리스티앙 디오르, 피에르 발망 등은 2찯전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파리의 예술성을 과시했다.


 

특히 1947년에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여성미를 한껏 드러내는 뉴룩(NEW LOOK)을 발표해 전세계 여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프랑스의 오트쿠튀르 패션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패션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오트쿠튀르는 시대가 변천하면서 고급스러운 전통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프레타포르테 고급기성복에 밀려 옛 명성 퇴색


 

오트쿠튀르의 폐쇄성이 프랑스의 패션산업을 대규모로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된다는 각성이 일기도 했으며, 이전에 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기성복 시장은 변화된 라이프스타일과 맞아 떨어져 오트쿠튀르 고객의 이탈을 부채질했다. 이러한 경향을 촉진한 것이 바로 1958년에 결성된 고급기성복협회인 프레타 포르테다.


 

여기에 대량 마케팅 체제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미국 등 신흥 기성복 디자이너들은 파리 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시장 규는 더욱 더 커지고 오트쿠튀르만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오트쿠튀르는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독주하지 못했다.


 

기존에 오트쿠튀르를 고집하던 디자이너들이 프레타 포르테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트쿠튀르는 더욱 축소돼 전성기에 비해 현재의 고객은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게 되었다.


 

최근들어 오트쿠튀르와 프레타 포르테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잇따. 특히 패션을 창작으로 여기서 오트쿠튀르를 대펴하던 이브 생 로랑의 은퇴와 함께 오트쿠튀르는 그 전통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트쿠튀르는 력서리그룹과 소수 유명인을 위한 살롱으로 여전히 패션의 꿈이자 예술적인 영역으로 건재하고 있다.